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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가문·족벌정치 건재 보여준 두테르테의 시장 당선

등록 2025.05.14 10: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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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학살 등으로 ICC 재판 중, 고향에서는 압도적 당선

지역 기반 정치 가문, 관직 독점·세습…부패 낙마 후 재기 되풀이

[마닐라=AP/뉴시스] 지난 3월 17일(현지 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활동가들이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과 로널드 '바토' 델라 로사 상원의원의 사진을 들고 이들의 유죄 판결을 촉구하며 말라카냥궁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 이후 ICC 재가입을 촉구했다. 필리핀은 2019년 ICC에서 탈퇴했다. 2025.05.14.

[마닐라=AP/뉴시스] 지난 3월 17일(현지 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활동가들이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과 로널드 '바토' 델라 로사 상원의원의 사진을 들고 이들의 유죄 판결을 촉구하며 말라카냥궁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 이후 ICC 재가입을 촉구했다. 필리핀은 2019년 ICC에서 탈퇴했다. 2025.05.14.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필리핀에서 12일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다바오시 시장에 당선돼 가문정치, 족벌정치가 다시금 확인됐다.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세습하면서 부패나 비리를 저질러도 정계에 다시 복귀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을 지내다 비리로 물러난 뒤에도 시장이나 하원의원 등으로 정치 생명을 이어가고, 아들이 대통령을 이어받아 다시 권력에 복귀하는 일도 잦다.

두테르테 구금 중 시장 당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대량학살 혐의 등으로 구금 중이지만 이번 총선에서 비공식 개표 결과 경쟁 후보보다 8배 이상 많은 표를 얻었다.

다바오시 부시장으로 출마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아들 세바스티안 후보도 당선이 유력시돼 두테르테 대통령이 ICC 재판에서 종신형을 받는 등 풀려나지 못할 경우 시장직을 대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반인류 범죄로 국제사회의 법정으로 단죄를 받고 있으나 필리핀에서 정치적 입지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두테르테는 2016년 아키노 3세에 이어 처음 당선되면서 “나는 특권층의 자식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부친이 1950년대 다바오 주지사 및 마르코스 대통령 당시 비서관 등으로 중앙 정치무대에서 활동했다. 부친의 후광으로 20여년간 다바오 시장을 역임한 뒤 대통령이 됐고 퇴임 후 다시 시장으로 복귀한 것이다.

두테르테 딸 사라는 아버지로부터 다바오 시장 자리를 물려받아 정치 경력을 쌓은 뒤 2022년 17대 대선에서 경쟁자인 봉봉 마르코스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됐다.

마르코스 가문의 부활 

1983년 8월 21일 필리핀 베니그노 아키노 전 상원의원이 3년 여 미국 망명생활을 마치고 마닐라 공항에서 비행기에서 내리던 중 암살됐다.

그의 암살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항의하는 ‘피플 파워’는 1986년 2월 21년간 집권해온 마르코스를 낙마시켜 아시아 각 국 민주화 운동 도미노의 시발점이 됐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에 이어 아키노 전 의원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에 올랐고, 아들 아키노 3세도 대통령에 올랐다.

하지만 아키노 3세가 대통령(2010∽2016년)을 지내던 시기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 봉봉 마르코스 2세는 2010년 상원의원이 됐다.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도 2014년 2월 총선에서 83세의 고령에도 고향 일리코스 노르테주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하원의원에 재선됐다. 딸 마리아 이멜다 마르코스도 주지사를 연임하는 등 건재를 과시했다.

이때 총선으로 부패 혐의 등으로 축출됐던 마르코스 가문의 부활을 확인한 데 이어 2022년 봉봉 마르코스는 두테르테에 이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페르디난도 마르코스는 루손섬 북부 명문가 출신이며, 부인 이멜다 역시 중부지역의 명문가인 로무알데스가 출신이다.

이멜다 마르코스는 남편이 독재로 실각한 뒤 하와이로 망명했지만 남편이 죽자 귀국해 2010년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장녀 아이미 마르코스는 일로코스 주지사에 이어 상원의원에 선출됐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현 정부가 자신을 ICC에 체포돼 재판받게 한 것은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두테르테의 ICC 재판은 반인륜 범죄에 대한 단죄와 필리핀의 내부 정치 족벌가문의 세력 투쟁이 얽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리핀의 가문 족벌 정치

미국이 1898년 필리핀을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유산가들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다.

이들은 투표권을 이용해 지역내 기반을 더욱 강화했고, 독립 이후에도 선출직과 공직을 점유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했다.

주요 가문이 중앙과 지방의 주요 관직을 독점하고 대를 물리면서 필리핀의 각급 선거는 유력 가문들의 세력 대결이자 지역 토호간 경쟁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뉴욕타임즈(NYT)는 필리핀은 40여개 정치가문이 전체 국민총생산(GDP)의 76%를 장악하고 있고, 하원의원의 80%, 지방자치단체장 대다수가 이들과 직 간접적으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2014년 총선에서는 부패 혐의로 수차례 탄핵 위기를 겪다가 물러났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전 대통령도 기반 지역인 팜팡가 주에서 하원의원에 재선됐다.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개혁을 추진하면서 부패척결 1호로 아로요 전 대통령을 꼽은 바 있다. 마카파갈 가문은 부녀(父女) 대통령을 배출했다.

12대 대통령 피델 발데스 라모스는 루손섬 일로코스 지방에 속한 팡가시난주 유력 정치가문 출신으로 부친도 국회의원과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6촌 관계였지만 1986년 독재 타도를 위한 민중봉기에 참가해 코라손 아키노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된 뒤 후에 대통령까지 올랐다.

이밖에 라우렐, 로하스 가문 등 지역을 기반으로 한 약 10개의 가문이 필리핀 정치를 좌우한다는 분석도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kjdrag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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