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소라 네오 감독 "정치적 각성, 청춘은 슬퍼요"
영화 '해피엔드' 연출·각본 소라 네오 감독
日 영화 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 아들
"3·11 대지진 후 정치 각성 영화로 이어져"
일본 뉴제너레이션 중 한 명으로 급부상
정치·사회적 맥락과 함께 청춘 감각 그려
"계엄 극본 한국 관객 크게 공감할 작품"
![[인터뷰]소라 네오 감독 "정치적 각성, 청춘은 슬퍼요"](https://image.newsis.com/2025/05/15/NISI20250515_0001843722_web.jpg?rnd=20250515181405)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칸과 아카데미를 휩쓸었을 때만 해도 한국영화는 양과 질 모두에서 끝을 모르고 커나갈 것 같았다. 반면 1950~60년대와 1990~2000년대 소위 거장으로 불리는 명감독을 잇따라 내놓으며 세계 영화계 한 축으로 인정 받았던 일본영화는 당시 크게 위축되며 암흑기에 접어들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이 구도는 단 몇 해 만에 뒤집어졌다. '기생충'으로 정점을 찍은 한국영화는 코로나 사태 이후 극심한 매너리즘에 빠지며 양과 질 모든 면에서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과 달리 일본에선 후카다 고지,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 하야카와 치에 등 이른바 뉴 제너레이션으로 불리는 연출가들이 잇따라 등장하며 일본영화 재부흥을 이끌고 있다.
일본영화 뉴웨이브는 새 얼굴을 속속 추가하며 세를 불려가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소라 네오(34) 감독이다. 영화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들인 그는 2023년 아버지의 마지막 공연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오퍼스'로 데뷔한 뒤 지난해 내놓은 첫 번째 장편 극영화 '해피엔드'를 통해 단번에 일본영화 새 기수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이 작품은 그 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 초청 받으며 주목 받았고, 지난달 30일 국내에 공개돼 "동시대 일본 사회의 불안을 담아낸 청춘영화"라는 평가를 받으며 14일까지 약 6만6000명이 봐 흥행에 성공했다. 극영화를 딱 한 편 만든 감독인데도 벌써부터 "거장의 재목을 갖췄다"는 다소 과장된 상찬이 나올 정도로 연출력을 인정 받고 있다.
최근 소라 감독을 만났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한 반응은 일본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뜨거울 것 같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지난 2월부터 한국 정치 뉴스를 계속 지켜봐왔다"며 12·3 내란 사태를 언급했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모여 자기 목소리를 내는 문화가 한국엔 뿌리내려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영화에 더 공감해주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인터뷰]소라 네오 감독 "정치적 각성, 청춘은 슬퍼요"](https://image.newsis.com/2025/05/15/NISI20250515_0001843724_web.jpg?rnd=20250515181511)
'해피엔드'는 근미래 도쿄를 배경으로 고등학교 3학년 5인방을 등장시킨다. 이중 주인공은 유타(쿠리하라 하야토)와 코우(히다나 유키토). 졸업을 앞둔 이들은 테크노 음악을 좋아해 몰래 클럽에 함께 갈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특히 유타와 코우의 관계는 각별하다. 유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코우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를 아끼고, 코우는 질색하면서도 유타의 말을 받아준다. 하지만 자이니치인 코우가 정치적으로 각성하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 관계엔 금이 가기 시작한다.
흔히 청춘영화는 꿈과 사랑에 몰두한다. 이때 이들의 열정은 대체로 사회적 맥락과 무관할 때가 많고, 특히나 그들의 언행과 선택엔 정치적 맥락이 부러 배제돼 있다. '해피엔드'는 다르다. 정치·사회적 시대상이 이 청춘들의 행보를 사실상 규정하는 데 이르고, 여기에 더해 지진이라는 일본 사람들의 근원적 불안을 바탕에 깔아 이 이야기를 사회 전체로 확대한다.
"이 영화엔 제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서 쓴 게 있고,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를 생각하면서 쓴 것들이 있어요. 3·11 동일본 대지진은 제게 정치에 눈을 뜬 계기가 됐습니다. 방학 때 일본에 돌아와서 반원전 데모에 참여한 게 시작이었죠." 이 작품엔 실제로 데모 장면이 나오고, 코우를 포함한 일부 학생이 권력자 교장을 감금하고 투쟁 전선을 구축한다.
"2010년대는 미국에서 사회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였어요. '월가를 점령하라'가 있었고, '블랙 리브스 매터'가 있었습니다. 반트럼프 시위도 계속 됐고요. 젊었고, 토론도 활발해서 정치적으로 성숙했죠. 그런데 제가 이런 문제 의식을 갖게 되면서 친구들과 멀어진 겁니다. 어떤 친구와는 대화도 하지 않게 됐죠. 그때 느꼈던 그 슬픈 감정을 이 영화에 담은 겁니다."
대지진 가능성에 관한 공포, 일상화 된 감시에 대한 불만, 갈수록 극단화 하는 정치 등 각종 사회 이슈를 짚고 있는 영화이긴 하나 무겁고 어둡기 만하진 않다. 클럽에 갔던 5인방이 경찰을 피해 도망치는 순간의 에너지, 교장의 스포츠카를 학교 한 복판에 수직으로 세워버리는 방자함, 이젠 각자의 길을 가게 될 두 친구의 표정에 스친 애달픔은 분명 청춘 특유의 감각이다.
![[인터뷰]소라 네오 감독 "정치적 각성, 청춘은 슬퍼요"](https://image.newsis.com/2025/05/15/NISI20250515_0001843725_web.jpg?rnd=20250515181540)
소라 감독은 이 이질적 요소들이 제목에 투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분명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습니다. 희망이 쉽게 보이지 않아요. 그 느낌은 엔드(end)라는 말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젊은이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에선 해피(happy)를 본 거죠. 그래서 '해피엔드'가 된 겁니다." 그는 더 솔직한 답변도 있다면서 "해피엔드라는 말의 느낌과 발음이 직감적으로 좋기도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오프닝 시퀀스를 포함해 '해피엔드'는 매 장면 음악이 돋보인다.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피아노 멜로디, 테크노와 클래식이 결합한 음악은 허약한 청춘과 불안한 우정이라는 테마와 딱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아버지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받은 영향에 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소라 감독은 "아버지는 아버지로 존재할 뿐"이라고 했다.
"글쎄요.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같이 영화를 본 적도 있고, 아버지가 제게 보라고 한 영화도 있었으니까요. 그런 게 제 안에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제게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로 존재합니다."
소라 감독은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와 장편 극영화를 한 편 씩 만들었다. 앞서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도 있을 만큼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적지 않지만 앞으로 만들 영화는 극영화가 될 거라고 했다. "전 극영화 쪽 DNA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극영화를 훨씬 더 좋아합니다.(웃음) 내 진정한 첫 작품은 '해피엔드'라고 생각해요."
![[인터뷰]소라 네오 감독 "정치적 각성, 청춘은 슬퍼요"](https://image.newsis.com/2025/05/15/NISI20250515_0001843726_web.jpg?rnd=20250515181556)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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