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60주년' 맞은 '꼬마신랑' 김정훈 "은퇴요? 반드시 돌아옵니다!"
1965년 네 살 때 영화 '이 세상 끝까지'로 데뷔
'꼬마신랑' '고교얄개' 등 거치며 시대 풍미한 아역·하이틴 스타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배우 김정훈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뉴시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04.23. jini@newsis.com](https://image.newsis.com/2025/04/21/NISI20250421_0020780513_web.jpg?rnd=20250421151516)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배우 김정훈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뉴시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04.23. jini@newsis.com
'연기 신동'이라 불리던 '아역 스타'를 거쳐 당대를 풍미한 하이틴 스타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는 사실 김정훈의 시대였다.
1965년 네 살 때 영화 '이 세상 끝까지'(감독 고영남)로 연기 입문한 김정훈은 올해가 데뷔 60주년이다.
당시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한 '미워도 다시한번'(1968·감독 정소영)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필사의 검'(1969·감독 김시현),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1970·감독 정진우), '꼬마신랑'(1970·감독 이규웅)으로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특히 김정훈은 배우 문희가 주연을 맡은 '꼬마신랑'에서 꼬마신랑 '만득' 역을 맡아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며 '만년 꼬마신랑'이 됐다. 이후 '고교얄개'(1976·감독 석래명), '얄개 행진곡'(1977·감독 석래명)으로 젊은 팬을 몰고 다녔다. '꼬마신랑' '고고얄개' 모두 아류 시리즈를 양산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작품들이었다.
'고고얄개' 이후 연기 판을 떠나 다양한 삶을 경험하고 사업 부침과 심근경색 등을 겪은 김정훈은 그럼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을 놓은 적이 없다. 몇 년 전에도 독립 영화 등을 찍는 등 재기를 위한 발판을 여러 개 마련 중이다.
어린 시절의 형형한 눈빛과 순수함을 여전히 간직한 김정훈을 최근 '영화의 거리'로 통한 충무로에서 만났다. 충무로는 영화 흔적이 없어진 지 오래됐지만, 그는 예전 시절 기억을 생생히 꺼내 놓으며 본인 자신이 영화판 증인이자 증거임을 증명했다. 그가 입은 밝은 초록색 카디건은 여전히 그가 새로운 새싹을 피울 수 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다음은 김정훈과 나눈 일문일답.
-현재 근황은 어떻습니까?
"전 원래 사는 곳이 한국이 아니라 미얀마예요. 코로나가 확산할 당시인 2020년 3월에 나왔다가 상대국 공항이 폐쇄가 돼 버렸어요. 그렇게 한국에 머물렀는데 (2021년 2월 미얀마에서) 또 쿠데타가 났어요. 그 바람에 현지 가지도 못하게 됐죠. 원래 제 친구하고 하던 일이 있어요. 마스크팩, 에센스 제조를 하고 있는데 중국 측과 얘기가 돼서 현지 공장을 설립해요."
-사업에도 재능을 갖고 계세요?
"재능이라기보다는…연예계가 너무 바뀌어서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외국에서 10년 이상을 살았는데 돌아와 보니까 너무 바뀌어 가지고… 제가 알던 분들은 전부 현장에 계시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기회를 봐서 다시 하자' 마음을 먹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는 거죠. 미얀마에선 윤활유, 선박, 오일, 변압기, 자동차 사업을 했었어요. 지금 사업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엔터 쪽 일을 하기 위한 거예요. 출연이 안 되더라도, 연극 제작을 해보고 싶은데 자본이 있어야 가능하잖아요. 돈을 벌어서 엔터 쪽으로 한번 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배우 김정훈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뉴시스 본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4.23. jini@newsis.com](https://image.newsis.com/2025/04/21/NISI20250421_0020780508_web.jpg?rnd=20250421151517)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배우 김정훈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뉴시스 본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04.23. jini@newsis.com
"전 제가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살았어요. 소풍, 수학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촬영을 해야 되니까…. 그런 생활이 좀 지긋지긋해져 1981년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하고 대만으로 훌쩍 떠났어요. 그 전에 대만 측과 인연이 있어서 대만에서 영화도 찍고 했었거든요. 대만에서 생활하며 대학도 나오고 일을 했는데 세월이 흐르니까 다시 연기가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사실 이 일을 했던 사람들은 이거 못 버려요.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또는 무대 위에 섰을 때 그때만큼 내 자신이 뿌듯하게 느껴질 때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자꾸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죠."
-올해가 데뷔 60주년을 맞는 해더라고요. 영화 '이세상 끝까지'가 데뷔작인데 당시 촬영 현장이 기억나세요?
"사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거의 없어요. 첫 작품, 둘째 작품, 셋째 작품까지는 거의 기억이 없고… 간간히 기억나는 건 밤 샐 때 졸려서 잠을 못 자니까 고생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다섯 살, 여섯 살이면 애기잖아요. 배우분들이 저를 아들처럼 잘 보살펴 주셨어요. 김지미 선생님은 제가 잠깐 잠이 들면 '정훈이 좀 더 자게 쉬다 찍자'고 하시면서 배려를 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아역 배우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저는 아역 때부터 너무 활동하는 것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반대해요. 왜냐면 애가 애다워야 하는데 어른들 세계에서 휩쓸려서 생활을 하다 보면 애가 애답지가 못해요. 조숙해지는 거죠. 제 경험이에요. 학교에 갔는데 책상에 줄 긋고 '넘어오지 마' 그러잖아요. 그때 당시에 그게 그렇게 유치해 보였어요. 그런 게 사실 정상인데 말이죠. 그렇다고 제가 어른의 세계에 가서 어른들하고 말을 섞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또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중간에 고립이 되는 거예요."
-그럼 반대급부로 아역배우를 하셔서 얻은 건 무엇이었나요?
"인기죠. '만인이 알아봤다'는 거. 그리고 제가 원하는 건 항상 내 눈앞에 와 있었다는 거. 그런데 애가 원해봤자 뭘 원하겠어요. 장난감밖에 더 있어요. 돈은 모르니까요. 근데 그 인기를 시기, 질투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심지어 돌을 던지는 분들도 있어요. 돌도 맞았었어요. 발로 차고 도망가기도 하고."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배우 김정훈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뉴시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04.23. jini@newsis.com](https://image.newsis.com/2025/04/21/NISI20250421_0020780514_web.jpg?rnd=20250421151516)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배우 김정훈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뉴시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04.23. jini@newsis.com
"길 걸어 다니기도 쉽지 않았어요. 제가 하도 사람 손을 타니까요. 걸어다니면 볼을 잡거나 머리를 쓰다듬으시는데 그게 너무 많으니까 싫더라고요. 그때 어떤 분이 손만 들어도 제가 방어자세를 취할 정도였대요."
-'꼬마 신랑' 타이틀이 계속 붙는 건 괜찮으세요. 이런 말씀 외람되지만 눈이 아직도 정말 맑고 순수함이 가득해요. 어릴 때 그 눈이에요.
"저희 어머니가 되게 동안이세요. 어머니가 물려주신 것 같은데…. 지금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기에는 꼬마 신랑이라는 타이틀이 안 좋은 거죠. 사실 연기자들도 프로잖아요. 어떤 작품이 오더라도 분석, 연구를 하고 캐릭터에 맞춰서 끌고 갈 수가 있어요. 그런데 '쟤는 꼬마 신랑이니까'라는 선입견을 갖고 계신 거 같아요. 그 이미지 때문에 일단은 선을 딱 긋고 가버려요. 근데 이해해요. 그분들 입장에서 보면 모험이잖아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타파하느냐, 저한테 큰 숙제인 것 같아요."
-근데 이미 연기력을 검증 받으신 게 거는' 꼬마 신랑'으로 국민적인 아역 스타가 되셨다가 '고교 얄개'로는 하이틴 스타가 되셨잖아요. 아역에서 청춘 스타로 넘어간 케이스가 많지 않은데 유승호, 여진구 씨 같은 케이스의 원조 격이잖아요.
"사실은 ('고교얄개' 이후)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면서도 (연기 경력이) 계속 이어질 수가 있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 생활이 너무 지겨워서 털고 대만으로 가버린 거죠. 대만에서도 '꼬마신랑', '미워도 다시 한번'이 크게 히트했고 이후 어릴 때 대만에 가서 영화를 여덟 작품을 찍으면서 1년을 있었어요. 그래서 얼굴을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문화가 다르니까 저를 건드리시는 분은 없었거든요. 그것이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나서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만을 찾아간 거죠. 그곳에선 제가 원했던 것을 했어요. 한국에 있었으면 못 했을 캠퍼스 생활도 하고, 그렇게 81년부터 89년까지 대만에 있었죠. 역사학 전공으로 대학원에도 갔는데 졸업은 못 했고요. 원래 꿈은 그곳에서 계속 공부를 하면서 외무고시를 보는 거였어요. 어릴 때부터 대사 외운 습관이 있으니까 문과 쪽 머리는 있었거든요. 또 여행을 좋아해요. 다른 문화를 접하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잖아요."
-말씀 듣다 보니까 연기도 여행과 같잖아요. 사업하시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다 연기로 이어질 수 있을 거 같아요.
"배역을 분석할 때 저도 모르게 밤을 새워요. 완전히 몰입이 돼 버리더라고요. '적성에 맞는구나'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현재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너무 젊은 배우들 위주로 돌아간다는 지적이 있어요.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배우 김정훈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뉴시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04.23. jini@newsis.com](https://image.newsis.com/2025/04/21/NISI20250421_0020780511_web.jpg?rnd=20250421151516)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배우 김정훈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뉴시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04.23. jini@newsis.com
-선생님 혹시 연기하신 걸 후회하신 적은 없나요?
"예 후회는 안 합니다. 지겹고 지긋지긋했지만, 연기를 할 때만큼 제가 행복했었던 적이 없었어요. 68년도에 제가 출연한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영화가 히트했거든요. 당시 서울 인구가 400만명이었는데 37만명이 들었어요. 그 때는 멀티플렉스가 아니라 개봉관 딱 하나인데요. 국도극장에서 개봉했는데 매표소에서 시작한 줄의 끝이 안 보이는 거예요. 감독님이 '네가 찍은 영화를 보려고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고 말씀 해주시는데 뿌듯하더라고요. 물론 관객들이 저만 보러 오신 건 당연히 아니지만, 그 때 기분은 아직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촬영이 끝난 뒤에도 스태프들이 함께 나눴던 정도 잊지 못하고요."
-엔터 일 참여는 항상 열어두고 계신 거죠?
"여태까지 '제가 은퇴했습니다'라는 말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고요. 근데 팬분들은 제가 안 보이니까…. 저는 항상 그랬어요. '제가 필요해서 불러주시면 언제든 갑니다'라고요. 유튜브도 생각 중이에요. 옛날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중장년층이 볼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 중입니다. 제가 아이디어가 많은데 이걸 풀어줄 사람이 필요해요."
-마지막으로 기다리시는 팬분들에게 한 마디 남겨주신다면요.
"김정훈이 절대 은퇴한 거 아니고 떠난 거 아니니까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제가 돌아와서 연기를 하든 제작을 하든 여러분들한테 다 알릴 거니까 옛날처럼 많이 좋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반드시 돌아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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