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늘어난 보이스피싱…수사기관 ‘사전 탐지·차단’ 미흡

[서울=뉴시스]이태성 기자 = "법원 등기를 배송하려는데 월요일 오후 1시에 자택에서 수령 가능하신가요? 본인이 직접 받으셔야 해요. 아니면 수령지 변경 방법을 안내해 드릴게요."
지난주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정부 사이트와 유사한 인터넷 주소를 굳이 직접 입력해 접속하라고 유도하는 것이 미심쩍어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이와 비슷한 전화를 유독 많이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보이스피싱 범죄 발생 건수는 5878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2% 증가했다. 피해 금액 역시 3116억원으로 120.8% 급증했다.
보이스피싱이 사회적 문제로 주목받고 정부와 기업이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범죄가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범죄 발생을 사전에 억제하지 못하다 보니 정부는 피해 예방을 위해 시민들에게 범행 수법을 알리는 홍보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피해자 중 상당수가 IT 이용에 취약한 고령층이어서 범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교육과 홍보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사회에 범죄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범죄 예방을 '개인의 경각심'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은 시민들에게 답답함과 불안을 느끼게 한다.
정부는 통신사와 협력해 보이스피싱에 이용되는 악성 애플리케이션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범죄조직 역시 점차 고도화된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 나가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가 점차 발전하는 보이스피싱에 맞서 개인 차원의 주의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이 통신사와 협업을 통해 전화나 문자를 사전에 탐지·차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보이스피싱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통신망을 통한 대규모 발신 ▲개인 기기를 통한 수신 ▲금융기관에서의 피해 발생 순이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첫 발신 단계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다른 두 단계에 비해 개선의 여지가 크고, 범죄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발신 번호 변작 과정에서의 통신사 책임을 강화하거나, 비정상적인 발신 패턴을 분석해 차단하는 기술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탐지·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예방해야 한다.
보이스피싱 대응을 위한 골든타임을 이미 놓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들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수사기관과 관련 기업은 보다 큰 책임감을 갖고 대책 마련에 몰두해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victory@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