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개천 용' 대신 이무기 삶 선택"…대입 거부한 청년들[2024수능]

등록 2023.11.16 06:00:00수정 2023.11.16 06:13:29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대학 비진학 '투명가방끈' 활동가 인터뷰

레슨 강사가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또래들 취업 시기 불안" "배제와 무관심"

일상속 차별 극복하려 '대입거부 모임'

"대학 안 가더라도 교육권 보장해줘야"

[서울=뉴시스] 16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서 열리는 투명가방끈의 '우리들의 실패, 실패자들의 연대' 행사 홍보물 (사진=투명가방끈 제공) 2023.11.15.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16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서 열리는 투명가방끈의 '우리들의 실패, 실패자들의 연대' 행사 홍보물 (사진=투명가방끈 제공) 2023.11.15.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고등학교 다닐 때 '너희 공부 못하면 ○○역 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한 지방대(비수도권 대학) 셔틀버스가 거기 섰거든요. 공부 못하면 지방대 간다는 말을 돌려서 한 거죠."

난다(32)씨는 19살이던 2009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보지 않았다. 그는 "배신감이 들었어요. 학교에서는 늘 '직업의 귀천이 없다. 모두가 평등하다'고 배우잖아요. '대학 가는 게 맞나?' 고민하게 됐죠"라고 했다. 이후 2011년에는 대학 비진학자들의 모임 '투명가방끈'에 참여해 대학입시 거부 선언을 했다고 한다.

2024년도 수능 시험을 하루 앞둔 지난 15일 뉴시스는 투명가방끈 활동가 난다씨와 따이루(30)씨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수능을 보지 않은 난다씨는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면서 카페, 사무보조 등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취미로 레슨을 받던 악기 연주 강사에게 "대학 안 나오면 안 돼"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취미로 레슨을 받던 악기 연주 강사가 비진학자로 살고 있는 걸 알고는 '지금이라도 (대학) 가면 된다. 갈 수 있다'고 하더라"며 "상담을 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하는 얘기를 직접 들었던 때"라고 술회했다. 대입을 강권한 강사와는 레슨을 연장하지 않았다고 난다씨는 덧붙였다.

가장 불안했던 시기를 묻자 "2012년~2013년이 가장 불안했다. 또래가 휴학을 안 했으면 졸업과 취업을 앞둔 때"라며 "친구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였는데,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인권 운동을 시작한 따이루씨는 대학 비진학은 대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함께 포기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서류에 '중졸'과 '백수'를 써야 하다 보니 대학생 임대주택 등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입시 외 다른 교육을 받고 싶어도 평생 교육 과정은 프로그램 지원도 장소도 부족했다"며 "이런 배제와 무관심 속에서 살아왔다"고 전했다.

난다씨도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할 때도 대학 학력을 요구 받았다"며 "학력과 무관하게 사람들이 관심있고 배우고 싶은 게 있을텐데 그런 욕구를 충족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투명가방끈이 설치한 현수막이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 걸려 있다. (사진=투명가방끈 제공) 2023.11.15.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투명가방끈이 설치한 현수막이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 걸려 있다. (사진=투명가방끈 제공) 2023.11.15. photo@newsis.com



이런 대입 거부로 겪는 일상속 '배제와 차별'을 연대로 넘어서기 위해 시작한 게 투명가방끈 활동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2011년 30명을 시작으로, 2012년 18명, 2013년 7명 등 매해 수능일에 대입 거부를 선언한 사람들이 늘었다. 현재는 대학을 중퇴한 이들과 후원자 60여명이 모여 활동하고 있다.

따이루씨는 "'여기에 우리가 있다. 우리의 존재를 투명하게 만들지 말라'는 게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투명가방끈)의 활동 목표"라며 "말하자면 '개천에서 용 난다'는 고졸 성공 신화를 좇는 대신 '개천 정화 운동'으로 보면 된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들의 연대'가 투명가방끈"이라고 강조했다.

대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난다씨는 "교육의 목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좋겠다. 개인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게끔 돕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며 "원하는 걸 배우고 배운 걸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선순환이 이뤄졌으면 한다. 지금 교육의 목적은 '좋은 직장을 위해서' '돈 벌기 위해서'라는 의미로 축소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따이루씨 역시 "지금 교육은 다양한 사람들의 욕구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대학 입시 적합과 부적합으로 구분 짓기에 치중하는 것 같다"라며 "대학을 안 가더라도 교육권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투명가방끈은 지난 10일부터 수능 당일인 16일까지를 '비진학자의 가시화 주간'으로 이름 붙이고 각종 활동에 나선다. '우리들의 실패, 실패자들의 연대'를 주제로 한 올해는 기존 교육 제도가 수용하지 못한 트렌스젠더, 장애인 등 소수자를 위한 연대 행사가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fe@newsis.com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