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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시마 미카, 국내 J팝붐 계보학 확인…눈물의 24년 만에 첫 단독 내한공연

등록 2025.05.12 05:52:54수정 2025.05.13 09: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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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일 서울 고려대 화정체육관

각 회차마다 2시간30분 러닝타임에 꽉 찬 세트리스트

'눈의 꽃' '글래머러스 스카이'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등 히트곡 망라

고음 음정조차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가창력

[서울=뉴시스] 나카시마 미카. (사진 = 유진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05.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나카시마 미카. (사진 = 유진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05.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일본 스타 가수 겸 배우 나카시마 미카(42·中島美嘉)는 상실이나 아픔을 이야기할 때에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희망을 품고 있다.

2003년 발매한 10번째 싱글 '눈의 꽃(雪の華)'이 그런 정서를 가장 흩뿌린다. 야자와 아이 만화가 원작이자 나카시마가 타이틀롤을 맡았던 영화 '나나'(2005)에서 절망한 듯 반항적인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그 순간에도 따뜻함이 똬리릍 틀고 있었다.

나카시마가 데뷔 24년 만인 11일 서울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연 첫 단독 내한공연에선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이 이 같은 위로를 줬다.

일본 내에선 제목의 뉘앙스가 다소 강해 발표 당시 큰 호응을 못했지만,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재조명된 곡. 너 같은 사람이 태어나 살고 있는 세상을 조금 좋아하고 기대게 됐다는 화자의 고백은 큰 울림을 줬다.

이번 나카시마 콘서트를 다녀온 K팝 그룹 '더보이즈' 멤버 주학년이 팬들과 소통 플랫폼에서 이 곡에 감동 받았다며 커버할 수도 있다고 고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카시마의 이번 내한공연은 2001년 싱글 '스타스'로 데뷔한 뒤 2000년대 영원에 기억에 남을 순간들을 구축했지만, 이것이 그녀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한 장면들이 수두룩했다. 과거의 영광에만 기대는 가수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뮤지션이라는 걸 증거한 대목들이다.
[서울=뉴시스] 나카시마 미카. (사진 = 유진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05.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나카시마 미카. (사진 = 유진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05.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애초 이날 공연은 10일만 열릴 예정이었으나 티켓이 단숨에 매진되는 팬들의 성원에 힘 입어 이날 공연이 추가됐다. 양일 약 7500명의 관객이 운집했다. 

나카시마의 이번 공연은 무엇보다 최근 국내에서 불고 있는 J-팝의 인기 계보학을 확인해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사실 현재 J-팝 신드롬은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를 거쳐 J-팝 붐이 일었었다. 나카시마는 그 중 한자리를 꿰고 있었다. 최근 요네즈 켄시, 아이묭, 유우리 내한공연의 관객층은 20대가 주축이었다. 인터파크티켓에 따르면, 이번 나카시마 공연은 30대 이상이 82%를 차지했다. 화정체육관은 '요아소비', '미세스 그린 애플' 등 일본 핫한 그룹들이 첫 내한공연한 장소라 의미가 또 남달랐다.

첫 곡 '알고 싶은 것, 알고 싶지 않은 것(知りたいこと、知りたくないこと)'부터 나카시마의 매력이 드러났다. 곡 분위기를 해석한 예술적인 의상과 우아하면서 청아한 보컬이 몰입도를 높였다. 빗줄기처럼 여러 줄이 달린 챙이 넓은 모자를 썼는데, 관객의 감정도 우수수 쏟아내려졌다.

'가장 아름다운 나를'에선 선홍빛 긴 속눈썹 장식이 눈길을 끌었다. '꽃다발(花束)'에서 곡의 감정선을 표현하는 드라마틱한 가창력이 울림을 안겼다. 록 풍의 '저스티스(Justice)'에선 분위기를 바꿨다. 라이브 밴드의 탄탄한 실력이 드러났다. '나나' OST '글래머러스 스카이(GLAMOROUS SKY)' 땐 검정 모자를 깊게 눌러 썼는데 마치 나나가 성장해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드록 '러브 이스 엑스터시(LOVE IS ECSTACY)'에선 강렬한 보컬 색을 드러내며 팔색조 면모를 뽐냈다.

멘트를 전달할 때 팬들과 소통의 편의를 위해 통역가를 두기도 한 나카시마는 세트리스트에 고민이 많았다며 최대한 많은 곡을 들려주고 싶어서 일부 곡은 메들리로 묶었다고 했다. 그래서 전반부에 '올웨이스' '오리온' 같은 발라드가 메들리로 묶였고, 후반부엔 '라이프' '오버로드'처럼 신나는 곡들이 메들리에 포함됐다.
[서울=뉴시스] 나카시마 미카. (사진 = 유진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05.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나카시마 미카. (사진 = 유진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05.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곡엔 스크린에 자막으로 일본어와 한국어 해석을 띄워 더 공감케 했다.

나카시마는 상당수 곡에서 무용수를 등장시켜 감정 표현을 더 극적으로 만들었다. 발레, 현대무용이 주를 이뤘다. '불협화음'에선 특히 무용수의 마리오네트 인형 같은 절제된 움직임과 나카시마의 고음이 대비를 이루며 감정을 뒤흔들었다. 신나는 곡 메들리 뒤에 바로 들려준 '위 아 올 스타스'는 흥겨움의 정점이었다.

이날 공연은 화려한 의상도 볼거리였다. 특히 '미라클 포 유'를 부를 때 입고 등장한 연한 민트색 옷은 객석의 감탄을 불렀다. '연분홍빛 춤 출 무렵'을 거쳐 마침내 '눈의 꽃'의 전주가 나오자, 환호가 터져 나왔다. 객석에 일제히 스마트폰 플래시가 켜졌고, 내내 조용히 노래를 흥얼거리던 관객들은 조금 더 크게 떼창했다. 나카시마는 관객들의 합창에 한동안 귀를 기울였다.

나카시마는 "원래 오늘은 여러분들이 더 오고 싶다고 말씀을 안 해주셨으면 공연이 없던 날이었다"면서 "한국에서 라이브를 처음 하는데 추가 공연이 나올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앙코르곡 '언페어' '디어' '파인드 더 웨이'까지 나카시마는 멘트를 많이 하지 않고도 2시간30분을 가득 채우며 빈틈 없는 가창력을 선보였다. 고음에서도 음정이 흐트러지는 일이 없었고, 무엇보다 풍성한 울림이 일품이었다. 음원보다 라이브가 더 좋은 가수 중 한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관개방증을 앓아 한동안 가수 생활을 접었다, 다시 일어나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가수의 노래에 대한 진심의 흡입력은 어마어마했다.
[서울=뉴시스] 나카시마 미카. (사진 = 유진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05.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나카시마 미카. (사진 = 유진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05.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앙코르가 끝나고 밴드 멤버들, 댄서들과 90도로 마지막 인사를 한 뒤에도 무대 위를 쉽게 떠나지 못하고 펑펑 우는 나카시마의 모습엔 세월을 이겨내고 드디어 다른 나라 팬들과 만나 소통한 가수의 뭉클함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노래 부르는 내내 카리스마를 유지하던 나카시마의 눈물은 관객들의 마음을 더 파고 들었다. 자신을 다시 찾아주면 언제든 내한하겠다고 약속한 그녀다. 지난 9일 공항에 배웅을 나갔던 팬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이 같은 공연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먹먹해진 건 객석에 앉아 있던 스타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부터 나카시마의 팬이었다는 방송인 홍석천은 "(일본 패션 잡지) 논노(non-no)를 열심히 보던 때의 감성이 차 올라 뭉클해졌다"고, 노래에도 일가견이 있는 배우 고준(김준호)은 "향수가 넘쳤을 뿐 아니라 지금 시대의 가수라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추억의 가수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그 아티스트뿐 아니라 팬들도 고귀해진다. 나카시마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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