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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10년 전에 머물러 있으면 '검은 수녀들'

등록 2025.01.24 0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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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검은 수녀들' 리뷰

[클로즈업 필름]10년 전에 머물러 있으면 '검은 수녀들'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검은 사제들'(2015) 이후 한국 관객에게 오컬트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지난해 '파묘'가 1000만 영화가 되는 데까지 '곡성'(2016)이 있었고, '사바하'(2019)가 있었다. 한국영화 뿐만 아니라 해외 영화·드라마 등을 통해 접하게 되는 콘텐츠도 있었다고 본다면 낯설지 않은 게 아니라 이제는 이 장르에 꽤나 익숙해졌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눈에 익으면 새로운 걸 찾기 마련이다.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영화 3편이 각 작품마다 색채를 명확히 구분하면서 자극의 강도 역시 높여 간 건 그래서 자연스러움 흐름이었다. 그런데 '검은 수녀들'(1월24일 공개)은 마치 오컬트가 생소하기만 하던 10년 전으로 역주행하는 듯하다. 화려하지만 오컬트 특유의 충격은 무르기만하고, 이야기는 나아가지 못한 채 고여 있다.

권혁재 감독이 연출한 '검은 수녀들'은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에서 파생했다. 전작이 구마(驅魔)를 하는 사제의 이야기였다면, 이번 영화는 제목 그대로 구마 수녀를 담는다. 장미십자회 등 각종 설정이 고스란히 유지돼 있을 뿐만 아니라 '검은 사제들'의 김범신 신부(김윤석)가 수 차례 언급될 정도로 두 작품은 강력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검은 수녀들'의 핵심인 유니아 수녀(송혜교)가 김범신 신부의 제자라는 점도 반복해서 이야기 된다. 에필로그에선 두 영화가 하나로 수렴하고 있어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기억하고 좋아하는 관객에게 '검은 수녀들'은 꽤나 즐거운 팬서비스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신부와 수녀가 함께하는 새 구마 콤비의 탄생을 상상하게 하는 점도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클로즈업 필름]10년 전에 머물러 있으면 '검은 수녀들'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건 맞지만 '검은 수녀들'은 '검은 사제들'이 만든 세계를 확장하지 못한 채 흡사 리메이크 된 듯하다. 악령의 존재를 주장하며 교단 눈 밖에 난 사제(수녀)가 역시나 자신의 주장을 믿으려 하지 않는 다른 사제(수녀)와 힘을 합쳐 나이 어린 부마자(付魔者)를 구조한다는 이야기 흐름이 거의 다르지 않다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성별만 바뀌었을 뿐 캐릭터 설정이 유사하고, 일부 장면의 세부 사항이 '검은 사제들'을 빼다 박았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악령이 걸죽한 욕설을 할 줄 알게 됐다는 것을 빼면 이 장르 고유의 공포를 느끼기 어렵고(이미 '검은 사제들'에서 봤던 것들이다), 토속신앙을 더한 시도 역시 이미 '파묘'를 본 다수 관객에겐 그리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검은 수녀들'이 내세우는 게 이야기인 것으로 보인다. '검은 사제들'보다 한 단계 나아간 이야기로 승부를 본다는 얘기다. 특정 장르를 개척한 작품을 계승하면서도 장르적 재미를 내세우지 못하고 서사의 힘을 앞세우는 게 선뜻 이해하기 힘든데다가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방점을 찍어 줄 정도로 스토리가 인상적이지도 않다. '검은 수녀들'엔 '검은 사제들'에 없는 두 캐릭터가 있다. 하나는 이성을 신봉하는 의사 신부 바오로(이진욱)이고, 다른 하나는 수녀에서 무당이 된 효원(김국희). 설정만 놓고 보면 '검은 수녀들'의 이야기에 입체감을 더해줄 수 있는 결정적인 인물들이지만, 두 캐릭터는 강렬한 등장과 달리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소모돼 서사에 어떤 굴곡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클로즈업 필름]10년 전에 머물러 있으면 '검은 수녀들'


'검은 수녀들'이 가진 서브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연대에 관해 얘기하기도 하나 이건 말 그대로 서브 텍스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등장한다고 해서, 여기에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추가 됐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저절로 약자의 연대를 담은 서사로 격상될 순 없다. 그들은 약자 혹은 소수자로 보이지 않고, 그들을 옭아매는 어떤 것도 극복해내고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자신을 무시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신부 앞에서 대놓고 이죽거릴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구마를 행하는 데 어떤 거리낌도 없는 유니아 수녀는 결코 약자 같지 않다. 미카엘라는 귀태(鬼胎)라는 멸칭이 안겨다 준 트라우마를 어렵지 않게 벗어나는데다가 말더듬이 박수무당은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어찌됐든 송혜교는 2014년 '두근두근 내인생' 이후 11년 간 떠나 있던 한국영화로 다시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전작인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부터 보여주기 시작한 송혜교만의 카리스마는 '검은 수녀들'에서 극대화됐다. 유니아 수녀의 신념은 송혜교의 무표정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앞으로 그가 어떤 작품을 선택할지는 알 수 없지만 원하기만 한다면 그 앞에 놓인 선택지는 더 늘어날 것이다. 전여빈은 특유의 폭발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뻔한 남성 배우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숱한 한국영화들 가운데 신선한 두 여성 배우가 주연을 맡은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검은 수녀들'엔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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