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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지양, 주문은 카톡으로"…MZ 혼술바 가봄

등록 2023.05.03 10: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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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만든 MZ세대 '혼술 문화'

1인 리클라이너석 마련한 '인현골방'

맥주·하이볼·와인·논알콜·위스키 구비

말 없이 음악 즐기며 음주

[서울=뉴시스]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인현골방' 내부 모습. 2023.04.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인현골방' 내부 모습. 2023.04.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홀로 음주하는 게 민망하다는 편견은 사라진 지 오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혼술'은 MZ세대의 문화로 굳게 자리 잡았다. 심지어 '힙'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온라인상에서는 혼밥·혼술 레시피가 유행하며, 편의점에서는 혼술족을 겨냥한 저가 와인과 위스키가 판매되고 있다.

집에서 홀로 마시는 '홈술'도 인기지만 혼술족을 겨냥한 바(Bar) 역시 속속 생겨나는 추세다. 을지로 인근에 혼술의 성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 봤다. 바로 '인현골방'이다.

[서울=뉴시스]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인현골방' 외부 표지판. 2023.04.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인현골방' 외부 표지판. 2023.04.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을지로라 하면 곧 '힙지로'가 아닌가. 거기다 무려 '혼술 뮤직바'다. 고객들이 카카오톡으로 원하는 곡 및 라이브 영상을 신청하면, 주인장이 이를 임의의 순서로 섞어 재생해 주는 방식이다. 심지어 주류 주문까지 카카오톡으로 이뤄진다. 좌석은 1인석 위주로 구성돼 있다. 설령 단체로 오더라도 시끄럽게 떠드는 행동은 금지다.

즉 고객들은 조용히 혼술을 즐길 수 있을뿐만 아니라, 말 한마디 없이 타인과 음악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셈이다. 특별한 경험을 즐기러 온 MZ세대가 많을 것이라는 예상 하에 금요일 저녁 7시~8시50분 타임을 예약했다.

퇴근 후 간단한 샌드위치로 저녁을 대신하고 을지로로 향했다. 안주로 삼을 브이콘 과자를 손에 든 채였다. 인현골방은 냄새가 나지 않는 간단한 안주의 반입을 허용하고 있다.

[서울=뉴시스]'인현골방' 내부 좌석. 2023.04.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인현골방' 내부 좌석. 2023.04.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6시45분, 다소 이른 시각에 도착했다. 모 방송사의 음악 라디오 소리가 2층 문밖까지 들려왔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투박해 보이는 유리문을 열었다. 아늑하게 꾸며진 내부가 드러났다. 저녁 7시가 되지 않아 밖은 아직 밝았지만, 바 내부는 암막 커튼 덕택에 어둡고 차분했다.

리클라이너 5개가 빔프로젝터 화면을 향해 있었다. 각 좌석 앞의 책상에는 스탠드와 휴지, 손소독제, 메뉴판, 간식이 놓인 채였다. 마치 간이 영화관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좌석 뒤쪽으로는 수백개의 앨범이 든 장롱이 놓여 있었다.

[서울=뉴시스] '인현골방' 내부 좌석. 2023.04.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인현골방' 내부 좌석. 2023.04.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정 중앙인 3번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리클라이너의 쿠션이 포근하게 몸을 감쌌다. 다리 앞에는 받침대까지 놓여 있었다.

음료는 맥주, 하이볼, 와인, 논알콜, 위스키까지 매우 다양했다. 다만 안주는 간단한 치즈와 육포 종류에 그쳤다.

[서울=뉴시스]'인현골방' 카카오톡 주문 내용. 2023.04.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인현골방' 카카오톡 주문 내용. 2023.04.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접객은 카카오톡으로 진행됐다. 주인장에게 안내 메세지가 오면 그 내용대로 따르면 된다.

우선 잔나비의 라이브 영상을 신청한 후 도수가 높은 편인 '콥케 파인루비 포트(19.5도)'를 주문했다. 잠시 음악을 즐기며 기다리자, 주인장이 좌석 뒤쪽으로 조용히 접근해 술잔을 내려놓고 사라졌다.

여기까지는 전부 좋았지만 예상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른 손님을 기다렸지만 7시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이라면 혼술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을 것'이라는 필자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셈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진정한 혼술'을 즐기게 됐다.

[서울=뉴시스]'인현골방' 카카오톡 주문 내용. 2023.04.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인현골방' 카카오톡 주문 내용. 2023.04.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필자가 신청한 노래는 쿠레나 이시카와가 부른 '오프 더 월(Off The Wall)', 허회경의 '그렇게 살아가는 것', 토니 베넷의 '스트레인저 인 파라다이스(Stranger In Paradise)' 등이었다. 간간히 클래식 음악도 섞었다. 신청곡을 감상하다 보면 주인장이 카카오톡으로 추가 신청을 요청한다.

노래가 한 곡씩 재생될수록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친구 집에 놀러 온 느낌이라고 할까. 와인 한 잔을 더 시켰다. 술과 음악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느낌이 생경했지만 만족스러웠다. 취기 때문인지 갈수록 몸을 좌우로 흔들게 됐다.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고 발 받침대에 발을 올려놓았다.

[서울=뉴시스]'인현골방' 내부 모습. '콥케 파인루비 포트'를 주문했다. 2023.04.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인현골방' 내부 모습. '콥케 파인루비 포트'를 주문했다. 2023.04.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신청곡 목록이 동날 즈음 주인장이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필자의 신청곡 사이사이에 다른 곡을 끼워 넣어 준 것이다. 빌리 홀리데이와 고티예의 노래였다. 아무래도 고객의 취향을 십분 반영한 듯 보였다.

정신없이 음악을 즐기다 보니 1시간50분이 훌쩍 지나갔다. 어느새 취기가 바짝 올랐다. 리클라이너에서 일어나기 싫었다. 계산을 마친 필자에게 주인장은 "계단이 가파르니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아마도 많이 취해 보였던 듯하다.

비틀거리며 건물 밖으로 나오자 9시~10시50분 타임을 예약한 젊은이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뿔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뮤직바는 본래 밤에 손님이 더 많다. 뼈아픈 아쉬움을 느끼며 가게를 등졌다.

낯선 장소에서 혼자 조용히 음주를 즐기는 것.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경험이다. 언젠가 홀로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날이 오면, 개인적으로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에디터 DeunDeun
tubeguid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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